신(神. 상단전)이란?


물리적인 기(氣)가 기화작용에 의해 승화하면 논리적인 기(氣)로 변한다.

물리적인 기는 에너지의 근원이기도 하지만 어떻게 보면 생각 없이 움직이는 것 같은 느낌이 들 때가 많다.

자신은 무한한 에너지를 공급해주고 나머지는 알아서 하라는 식으로 목적의식없이 공급만 해주다보면 에너지덩어리를 어떻게 처분해야할지 고민에 빠져들기도 한다.

만약에 마음이라는 매체가 없었다면 에너지덩어리를 처분하는데 참으로 난감한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다행히 마음은 상하관계가 단절된 것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자신을 희생해서라도 이 둘의 관계를 끈끈하게 맺어주려고 발 벗고 나서기도 한다.


물리적인 기가 논리적인 기로 승화되기 위해서는 각고의 노력이 필요하며 물리적인 에너지를 영적인 에너지로 탈바꿈시키지 않고서는 힘든 일이기도 하다.

영적이라고해서 이상한 눈빛으로 쳐다보거나 신비하게 생각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영적이라는 말은 마음을 비운 상태에서 우주와 통한다는 말과 같은 의미로 통하기도 한다.

이는 정적인 상태에 들어야만 가능한 일이기도 하지만 마음을 통해 꽃을 피운 상단전의 노고가 돋보이는 순간이기도 하다.


상단전은 인당(니환궁)에 위치하며 에너지덩어리가 절정에 다다른 지상최고의 상태라고도 말할 수 있다.

중단전인 마음이 의식이전의 세계에서 움직인다면 상단전인 신은 선명한 의식을 갖고 전체를 통제하며 우주와 하나가 되기 위한 노력을 하는 곳이기도 하다.

마음은 의식이전의 세계이기 때문에 특별한 주문 없이도 우주와 통하는 매력을 지니고 있지만 상단전인 신은 선명한 의식을 갖고 우주와 본격적인 접촉을 시도하는 곳이기도 하다.

의식이전의 세계에서는 줄 것도 받을 것도 없지만 선명한 의식을 갖고 접촉하는 상단전과 우주와의 만남에서는 많은 것들을 건네받는 행운을 얻기도 한다.

이는 우는 애에게 떡을 하나라도 더 주게 되는 사람들의 지혜 속에서 발견되는 일이기도 하지만 우주 또한 조르는 사람에게는 하나라도 더 보여주려는 속성을 상단전은 그 누구보다도 잘 알고 실천한 까닭이기도 하다.


상단전에서는 제3의 눈을 통해 바라보는 우주와의 만남을 연결해주는 묘한 능력이 있기도 하지만 상단전엔 인체에서 가장 중요한 기능을 하는 뇌가 있고 뇌속에는 송과체(송과샘이라고 불리우며 제3뇌실의 뒤쪽 끝에 있으며 짧은 줄기에 의해 간뇌와 연결되어 있다.)가 있기에 영적인 만남이 이루어지고 있는지도 모르는 일이다.


상단전은 거울의 방이라고도 불리며 투시나 기타 영적인 현상들이 주마등처럼 나타나는 곳이기도 하다.

하지만 투시나 영적인 현상들이 나타난다고해서 그 사람이 특별하다거나 묘한 재주를 지녔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많은 사람들은 자신에게 나타나지 않는 조그마한 현상만 발견해도 그 사람을 특별한 사람으로 취급하거나 신처럼 여기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잘못된 생각에서 비롯되어진다는 사실을 알아야한다.

솔직히 투시나 신통력을 지녔다는 사람들을 만나보아도 보통사람들과 별다를 것이 없는 것이 대부분이다.

현상적인 것은 잠시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것이 대부분이며 계속해서 투시나 신통력을 지녔다고해도 세계적으로 큰일이나 위급한 상황에 처했을 경우에는 별 도움이 되지 못하는 것이 그들의 한계이기도 하다.

평소에는 마치 세상을 들었다놓았다할 정도의 신통력이나 있는 것처럼 자랑을 해도 실제로 위급한 상황에 처해있을 때는 도움한번 주지 못하고 끝나기도 한다. 그리고 하는 말이 신의 뜻으로 돌리거나 자연의 순리로 되돌리는 경우가 많다.


하늘의 뜻은 큰 것을 바라기보다는 자연의 순리대로 차근차근하게 접근해 들어오기를 바라고 있을 뿐 그 이상의 무모한 짓은 바라지 않겠다는 강경한 뜻이 내포되어져 있기도 하다.

하늘의 뜻이 얼마나 평등한지는 깨달음을 얻은 사람과 얻지 못한 사람을 비교해보면 잘 알 수 있을 것이다.

깨달음을 얻은 각자라도 깨달음을 얻은 순간 모든 부와 명예가 저절로 들어오지는 않는다. 그렇다고 자연이 깨달은 사람만을 위해 따로 자리를 내어주는 일도 없다보니 당장에 자신의 밥그릇은 자신이 해결해야하고 일반인처럼 똑같이 아침에 일어나 공부하고 일하는 일들을 반복해서 해야만 한다.

이는 죽을 때까지 이어지며 다만 깨닫지 못한 사람보다는 조금 앞을 내다보는 능력이 있어 자연의 순리에 더 빨리 적응할 수 있는 장점은 보장받기도 한다.

이를 통해 보아도 깨달음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으며 본래부터 있던 것을 안다고 해서 세상이 크게 달라지거나 천지개벽을 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잘 알 것이다.

그리고 지금도 성자들 못지않은 깨달은 각자들이 많지만 이들에 의해 세상이 근본적으로 변하지 않는 것을 보면 모두가 깨닫지 않으면 아무 소용없다는 것을 단적으로 증명해주는 좋은 예라 할 수 있다.


뿌린 데로 거두는 것은 만고의 진리이자 현실이다.

꿈은 아름답지만 현실은 언제나 냉혹하다는 사실을 알고 그에 맞게 나아간다면 크게 문제될 것이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