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에너지(氣)의 배경>


기란 생명에너지 또는 생체에너지로 불리기도 하고 기는 빛과 같은 의미를 지니고 있다.

기란 +(양) 성질을 지닌 전기성과 -(음) 성질을 지닌 자기성으로 음양의 결합관계를 유지하며 모든 만물의 원천적 에너지이다.

기를 해부학적으로 분해하여 색깔이나 모습을 표현해낼 수는 없어도 생명에너지로서 그 가치를 충분하게 표현해내는 우주에서 가장 아름다운 모습으로 존재한다.

기는 열과 빛을 필요로 하며 음양의 조화에 의해 천변만화하는 재주를 지니고 태어났다.

기가 한 번씩 움직일 때마다 변화가 일어나고 생명력이 느껴지며 강력한 매체로서 우주와 자연을 연결해주고 더 나아가 오묘한 법칙에 의해 움직이고 있다.

기는 극미한 입자로 형성되어져 있어 육안으로는 확인이 안 되지만 느낌으로 영성(심안)으로는 확인할 수 있는 존재이다.

또한 우리 주변에서 기의 존재를 간접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은 영구자석이나 전자석의 자기장과 전기장으로 확인할 수도 있다.

기가 실존하면서도 확인이 안 된다는 사실은 이를 검증해내는 과학적인 기술이 준비가 안 되어 있다는 말과 통할 것이다.

하지만 분명 우리 주변에 영구자석이나 전자석이 존재하듯이 기의 형태나 느낌 등은 간접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길이 있다.


10년 이상 영구자석과 전자석을 연구하기위해 실험한 적이 있었다.

인체를 기준으로 수련시에 나타나는 기감을 영구자석이나 전자석으로도 가능한지에 대한 실험이었다. 실험결과 인체에 미치는 영향이나 효과 면에서는 좋은 평가로 나타났지만 우주에너지인 생명에너지가 지니고 있는 순수한 기감은 느낄 수 없었으며 풍부한 자기장이나 전기장 또한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약하게 반응되어져 결국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그에 대응한 신소재를 개발하지 못한 원인도 있었겠지만 영구자석이나 전자석의 느낌은 수련시에 나타나는 기감하고는 질적인 측면에서 크게 차이가 났기 때문이다.

일례를 들면 똑같은 바람일지라도 인공적인 선풍기에서 흘러나오는 자연풍인 바람하고 자연에서 불어오는 자연풍하고는 그 질적인 측면에서 크게 다르듯이 영구자석이나 전자석은 자연적인 우주에너지인 기하고 많은 차이가 났다.

물론 공간학적인 측면에서 인공적인 에너지와 자연적인 에너지의 면적이 다른 한 원인도 있었겠지만 반드시 양적인 풍부함에서 느끼는 그런 느낌이 아니라 질적인 측면에서 분명한 차이점을 발견할 수 있는 것이었다.

처음 계획은 전자석을 통해 단광기기(丹光機器. 자동장치에 의해 태양열을 집열판(集熱板)으로 흡수하여 인공적인 에너지를 축적하듯이 우주에너지인 기를 집기판(集氣板)에 의해 기를 축적한 후 인체에 전자기장을 풍부하게 공급해주는 기계)를 개발할 목적이었지만 신소재를 개발하지 않고서는 불가능하다는 사실만 느끼고 중도에서 그만두고 말았다.

다시 말하면 우주태양발전위성(宇宙太陽發電衛星. 궤도에서 태양열을 이용하여 발전, 지상으로 보내는 인공위성. 거대한 집열판(集熱板. 너비가 5 km, 길이 18 km, 전기출력 500만 kw로 되어 있다.)을 부착한 인공위성을 고도 약 3만 6000 km의 정지궤도에 쏘아 올려 모은 태양열을 이용해서, 인공위성 안에서 발전한 전력을 마이크로파(波)에 의해 지상의 수신장치로 보낸다.)처럼 우주에너지인 기를 단광기기를 통해 인체에 축적시켜 고도의 수련과정을 통과하지 않고서도 손쉽게 기를 축적할 수 있도록 계획한 일이었다.

이를 성사시키기 위해서는 초고감도의 센서를 지닌 집기판(集氣板)을 개발해내는 일이 선결문제이고 이를 해결하기위해서는 신소재를 개발하지 않고서는 불가능하다는 사실만 뼈저리게 느끼게 되었다.

혹시 나중에라도 초전도체(超傳導(superconduction). 어떤 종류의 금속이나 합금을 절대영도(0 K:-273.16 ℃) 가까이까지 냉각하였을 때, 전기저항이 갑자기 소멸하여 전류가 아무런 장애 없이 흐르는 현상. 핵물리학의 분야에서 기포상자의 전자석이나 가속장치의 이온류 집속용 전자석 등에 쓰이는 초전도자석이 있다. 초전도체는 전기저항이 없어 저항에 의한 발열 ·열손실을 막을 수 있고, 세기가 큰 전류를 흘려서 강한 자기장을 만들 수 있기 때문에 초전도체를 이용한 전자석의 실용화가 연구되고 있다.)가 대중화된다면 한번 시도해볼만한 일이지만 아직은 기술적으로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단광기기(丹光機器)를 개발하려고 했던 목적은 고도의 집중적인 수련을 통해 풍부한 우주에너지인 생명에너지를 인체전자석의 원리에 의해 축적할 수 있는데서 착안한 일이기도 하지만 고도의 집중적인 수련을 할 수 없는 일반인들에게도 단광기기를 통해 기를 축적할 수 있다면 여러 가지 면에서 좋은 효과를 거둘 수 있지 않나하는 생각에서 출발하게 되었다.

아직은 기술적인 여러 가지 문제들이 복합적으로 나타나있지만 언젠가는 이러한 문제들이 해결되어지면 그때는 가능하지 않나하는 희망을 가지고 있다.


음양 이전의 세계를 태극(太極)이라 한다면 기 이전의 세계는 태허(太虛)로 불린다.

기를 스펙트럼을 통해 분석해보면 기 이전의 세계는 존재하며 본원적 우주통신국과 연결력을 갖는 매체가 바로 태허이다.

존재하면서도 존재 자체를 감출 수 있는 재주는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듯이 기 이전의 세계를 통해 우주의 신비는 속내까지 감출 수 없다는 사실을 여실히 보여주기도 한다.

현재까지는 약력, 중력, 강력, 전자기력의 4가지 힘이 발표되어져 있지만 기 이전의 세계를 제7의 힘으로 명명해본다.


우주에는 많은 물질과 비물질들이 존재하고 육안으로 확인할 수 없는 미확인 물질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다.

어쩌면 우주는 인간을 통해 자신의 모습을 한 꺼풀씩 보여주는 재미로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한꺼번에 다 보여주면 삶에 의욕을 잃거나 싫증을 낼까봐 사람들의 수준에서 바라볼 수 있는 겉으로 드러난 모습만 보여주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눈높이가 형성되면 그만한 수준에서 보여주고 마음이 변덕스러운 만큼 우주 또한 만만치 않다는 사실을 이를 통해 보여주기도 한다.

이는 혹시라도 사람들이 우주에 대한 반감을 갖고 반란을 일으킬지도 모른다는 사려 깊은 생각에서 나온 것이기도 하지만 우주는 사람들보다 항상 한발 앞서서 움직이고 있다는 느낌을 보여주고자 하는 의도에서 출발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눈을 감아도 보이는 빛이 우리 몸 안에는 있다.

우리 몸에는 늘 달고다니는 것이 하나있는데 그것은 바로 우주에너지인 생명에너지이다.

만질 수도 보이지도 않는 투명한 물체로 존재하며 자석의 극과 극의 반발력에 의해 자장력이 느껴지듯이 처음에는 물에 뜨는 부력감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하지만 차츰 기가 발전되어져가면서 전기성이 강한 짜릿한 감각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기는 전기성이나 자기성으로만 자신의 존재를 알리려고 하지않고 최첨단의 기법을 동원하여 시각화시키려고 노력하고 있다.

전기성과 자기성이 충돌을 시도하면 열이 발생하고 열이 발생하면 그 파편에 의해 빛이 탄생된다.

빛은 눈을 뜨고 있는 상태에서도 보이지만 눈을 감은 상태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물론 외부에서 느끼는 빛하고 내부에서 느끼는 빛의 질은 차이가 날 수 있다. 혹시라도 혼동이 일 것을 방지하여 외부에서 보이는 빛은 빛으로 정의를 내리고 내부에서 보이는 빛은 기가 승화된 빛으로 정의해본다.

이는 수련이라는 고도의 기술적 기법을 요구하고 있기도 하지만 일단 성공만 한다면 밖에서는 보이지 않던 기의 존재를 심안으로 확인할 수 있는 기회를 얻기도 한다.

기를 심안으로 확인할 수 있다는 것은 어떻게 보면 획기적인 일이 될 수도 있지만 인체의 신비가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눈을 감아도 빛을 볼 수 있다는 것은 과학적으로도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망막전류(網膜電流 (retinal current). 망막이 광자극을 받아 흥분하였을 때 생기는 전류. 전극의 한쪽을 각막 위에, 다른 한쪽을 무관전극(無關電極)으로서 신체의 다른 부위에 놓으면 기록되는 전류이다. 빛에 대한 적응상태와 빛의 강도에 따라 전류의 방향이 다르다. 나타나는 전류는 간상세포에서 나오는 전류와 원추세포에서 나오는 전류가 합쳐진 것으로 생각되고 있다. 간상세포에서 나오는 전류는 빛에 의해 음전하, 원추세포에서 나오는 전류는 양전하라는 것이 밝혀졌다.)에 의해 눈을 감아도 시세포(視細胞 (visual cell). 빛의 자극을 받아들이는 감각세포. 망막에 있으며 빛 자극의 수용기가 되는 세포로 핵절(核節) ·내절(內節) ·외절(外節)의 3부로 구성되어 있다. 외절 중 그 모양이 막대 모양인 것은 간상세포, 원추상의 것은 원추세포라고 한다. 2종류의 시세포는 망막 중에 존재하고 있으나, 주행성 동물의 망막에는 원추세포가 많고 야행성 동물의 망막에는 간상세포가 많다. 간상세포는 어두운 곳에서의 시각을, 원추세포는 밝은 곳에서의 시각을 맡고 색을 느낀다. 시세포에는 감광물질이 함유되어 있다. 간상세포에는 시홍(視紅:로돕신)이 함유되어 있다. 시홍은 물에 녹지 않고 글리코콜산으로 추출되는 복합단백질로 500 nm에서 최고흡수대를 나타내는데, 이 파장은 간상세포의 빛에 대한 감수성과 일치한다. 미소한 빛에너지로 시홍단백질이 변성되는데, 이것이 어두운 곳에서의 감광의 본질적인 것이라고 한다. 원추세포에는 이오돕신(최고흡수대 555nm)이 존재하며 이것이 감광성 복합단백질이다.)에 의한 시감도곡선(視感度曲線 (luminosity curve). 빛에너지에 대하여 인간의 눈이 감각하는 밝기의 정도를 나타내는 곡선. 인간의 눈은 같은 에너지의 광자극(光刺戟)에 의해 밝기에 대한 감각이 같지 않다. 파장 555nm의 황록색을 가장 밝게 감각하며, 이보다 파장이 증가하거나 감소하면 밝기의 감각은 약해진다. 이것을 시감도라 하며, 가로축에 파장을 잡아 곡선으로 나타낼 수 있는데, 이를 시감도곡선 또는 비시감도곡선(比視感度曲線)이라고 한다. 시감도에는 개인차가 있기 때문에 국제적인 약속으로서 표준적 시감도를 정해두고 있다. 망막의 시세포(視細胞)에는 추체세포(錐體細胞)와 간상세포(杆狀細胞)라는 2종류가 있으며, 밝은 곳에서는 주로 추체세포가, 어두운 곳에서는 간상세포가 작용하므로, 시감도곡선도 ‘밝은 곳의 시감도’와 ‘어두운 곳의 시감도’의 2종류로 구별된다. 일반적으로 시감도라 할 경우에는 ‘밝은 곳의 시감도’를 일컫는데, 이때 파장 555nm의 빛이 운반하는 에너지가 1W이면, 빛의 밝기로는 6,831m이 운반되며, 이것이 밝기의 단위를 이룬다. ‘어두운 곳의 시감도’에서는 간상세포의 감도가 파장 510nm로 최대가 되며, 청색빛에 대한 감도가 높다. 이 때문에 어두워짐에 따라 최대감도는 황록색에서 청색으로 이행하여, 적색은 어두운 것으로, 청색은 밝은 것으로 감각된다.)에 의해 외부에서는 비록 캄캄한 밤일지라도 약한 빛은 존재하기에 이를 통해 눈을 감아도 빛을 감지할 수 있게 된다.


이는 망막(안구벽의 가장 안쪽에 시신경이 분포되어 있는 투명하고 얇은 막. 발생학적으로는 뇌의 일부가 돌출하여 발육한 조직이다. 빛을 감수(感受)하는 시부(視部)와 빛은 느끼지 않고 모양체 ·홍채의 내부를 덮는 맹부(盲部)가 있다. 시부는 맥락막의 안쪽에 있고, 망막의 중앙에 있으면서 원추세포가 많고 노랗게 보이는 것을 황반(黃班)이라고 한다. 시부는 맥락막에 접하여 색소상피층, 그 안쪽에 원추세포 ·간상세포층 ·외경계막 ·외과립층 ·외망상층 ·내과립층 ·내망상층 ·신경세포층 ·시신경섬유층 ·내경계막의 10층으로 나뉘어서 유리체를 싸고 있다. 원추세포는 밝은 빛을, 간상세포는 약한 빛을 감수하는 시세포이다. 빛이 눈 속으로 들어오면 신경의 흥분이 후극의 시속유두(視束乳頭)에 모여서 대뇌에 전달되어 시기능이 성립된다.)내에 존재하는 간상세포(桿狀細胞 (rod cell). 눈의 망막에서 빛을 감지하는 세포. 봉상세포 ·간상체 ·간체라고도 한다. 막대 모양을 하고 있어, 영어로 로드(rod)라 한다. 원추세포와 섞여서 같은 열에 늘어서 있으나, 간상세포의 수가 훨씬 더 많다. 시각이 가장 예민한 중심와(中心窩) 쪽은 간상세포가 없고, 원추세포만이 모여 있다. 간상세포는 명암을 느끼고 원추세포는 색채를 느낀다. 간상세포는 외절과 내절의 2부로 구별되어 있다. 외절은 가늘고 여기에 로돕신이라는 색소가 있다. 빛을 받으면 로돕신의 색이 바래고, 빛을 차단하면 그 색이 회복된다. 내절은 약간 굵어진 부분이다. 간상세포는 시세포의 세포체 일부를 이루고, 바깥쪽을 향한 그 돌출부이다. 이 시세포의 핵은 망막의 외과립층 과립의 대부분을 이루고 있다.)와 원추세포(圓錐細胞 (cone cell). 척추동물의 망막의 가장 안쪽에 있는 시세포의 일종. 추체세포 ·추상체세포라고도 한다. 시세포는 그 형태와 기능상에 따라 원추세포와 간상세포의 2종으로 구별된다. 원추세포는 비교적 밝은 곳에서 물체를 보는 일(明所視 ·晝間視), 색을 식별(색감 ·색신)하는 데에 관여하고, 간상세포는 어두운 장소에서 물체를 보는(暗所視 ·夜間視) 데에 관여한다. 동물의 종류에 따라 양자의 수의 비율과 망막상의 분포가 다르다. 야행성의 동물은 원추세포가 적거나 또는 아주 없고, 주행성의 동물에서는 원추세포는 시중심(視中心:황점 ·황반 ·명반)에 가장 많다.)에 의해 확인할 수 있는 사항이다.

물론 수련이라는 고도의 기술적 기법이 첨가됨으로써 더욱 활발한 빛을 심안으로 확인할 수 있지만 어찌되었든 지간에 눈을 감아도 빛을 확인할 수 있다는 사실은 수련에 있어 획기적인 발견이라 아니할 수 없다.

그동안 단순하게 태양이나 태양구 기타 황금수레바퀴를 연상함으로써 기억력에 의한 추리에 의해서 기가 빛으로 형성되지 않았나하는 순박한 생각을 하는 수련자도 있겠지만 과학적인 이론으로 해명할 수 있는 기회가 있다는 것은 큰 위안으로 자리 잡기에 충분하다고 본다.


10대에 우연히 두 눈을 감은 상태에서 엄지와 검지로 10초 이상 지그시 꾹 누르고 있으면 안구와 손가락에서 흘러나온 전류의 마찰(대전현상)로 인해 블랙홀로 빠져드는 듯 한 착각을 일으키며 프랙탈과 카오스적인 현상이 잠깐씩 나타났다가 푸른 하늘에 공동화현상으로 변해 가는 것을 경험했던 적이 있다.

그 형상은 맑고 투명한 청람빛 하늘보다 더 푸르게 원형을 그리면서 우물크기만한 크기로 주변은 검은 부분으로 가려져 나타나 마치 깊은 우물 속에서 푸른 하늘을 올려다보는 느낌이 든다.

처음에는 자기유사성을 닮은 프랙탈현상으로 나타나다가 점차 카오스적인 현상으로 변해가고 선명한 컬러로 형형색색의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났다가 그 끝에 이르러서는 원형을 그리면서 공동화현상으로 변해가기도 한다.

지금도 가끔씩 실험을 해보지만 여전히 그러한 현상을 경험하게 된다.

특히 손가락을 갖다 대면 지구내외부에 전기성과 자기성이 흐르고 있는 것처럼 전기적인 현상과 자기적인 현상이 겹쳐 나타나면서 강한 전율을 경험하기도 한다.

물론 공동화현상은 매번 할 때마다 나타나지는 않고 타이밍이 잘 맞을 때 나타나기도 한다.

그리고 수련이 깊어질 때 소주천이나 대주천시에 기가 선명한 황금빛으로 나타나면서 각종 투시현상이나 영적교류가 발생하는 현상도 인체 내에서 빛을 감지할 수 있는 물질이 있기 때문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 때가 많았다.


이러한 현상들은 30여년 가까이 화두처럼 등장하여 줄곧 괴롭혀온 고민 중의 하나이기도 했다.

작년 11월 우연히 한 과학 선생님에게 자문을 구한 결과 그 의문이 풀리게 되었지만 그 이전까지는 참으로 풀기 어려운 수수께끼의 하나로 남겨져 있었다.


단전호흡을 하다보면 원리를 놓친 채 막연하게 수련에만 전념하게 되는 경우가 생겨나게 된다.

충분하게 연구해볼만한 시간적인 여유가 없어서 그럴 수도 있겠지만 결과만을 바라고 주어진 수련법에 전념하다보면 단순히 답습적인 차원에서 접근하게 되고 그 근원적인 문제에 대해 생각을 놓치게 되는 경우가 발생하기도 한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태양과 지구, 달 그리고 인체전자석의 원리에 의한 기의 축적과 눈을 감아도 보이는 빛을 감지하는 원리는 그동안 원리를 놓친 채 수련해온 수련자에게 일대 큰 획을 긋는 사건으로 기록되어질 만큼 획기적인 일이라고 본다. 또한 이 두 가지 학술적 이론만으로도 그동안 막연하게 진행시켜온 단전호흡에 대한 생각을 일거에 제거하고 새로운 각도에서 접근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특히 눈을 감아도 보이는 빛의 발견은 그동안 성자나 각자(覺者)들의 전유물로만 여겨져 왔던 투시나 영적교류에 대한 비밀을 밝혀줄만큼 획기적인 일이다.

앞으로 이 부분은 더 연구해볼만한 가치가 있지만 빛의 양에 따라 조절되는 송과체에서 분비되는 멜라토닌과 신경의 기본단위인 수상돌기(dendrite : 가지가 고도로 발달되어 있으며 정보를 받아들이는 부위. 주변 뉴런으로부터 자극을 받아들여 정보를 전기적 신호로 세포체와 축색으로 보낸다.) 그리고 망막전류에 의한 반응에 대해 깊이 있는 연구가 필요하다.

이는 망막전류와 송과체 그리고 신경이 어우러져 복합적인 작용을 하는 데에도 유심히 살펴볼 필요가 있겠지만 고도의 수련과정을 통해 형성된 생명에너지의 자극적인 반사작용에 의해 투시나 영적교류가 이루어지고 있는지에 대해서도 깊이 있는 연구가 필요한 부분이다.


위의 현상들을 발견함으로써 기를 빛으로 빛을 단으로 형성해나갈 때 뚜렷한 목표를 갖고 수련에 임할 수 있게 되었다.


이렇게 눈을 감아도 보이는 빛이 인체내부에 존재하는 것처럼 기를 외부에서 분석해내려면 과학적인 한계에 부딪혀 더 이상의 확인이 불가능하지만 심안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는 사실은 매우 의미 깊은 일이다. 

비록 심안을 통해 기를 확인한다할지라도 한조각의 기를 분석해내기란 나노(10-9, 0.000000001. 10억분의 1. 머리카락 크기의 10만분의 1)나 아토(10-18, 0.000000000000000001. 100경분의 1) 이상의 극미한 세계를 들여다볼 수 있는 절정에 다다른 수준이 아니고서는 힘든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수련이 어느 정도 깊어지면 한조각의 기를 분석해내기는 어렵겠지만 다량의 기가 뭉쳐진 형태를 통해 기의 존재를 느끼는 일은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다.


기가 형태를 지니기 위해서는 충돌을 시도해야하며 열과 빛을 발생시켜야만 한다.

이는 일반적인 방법을 동원해서는 힘들고 눈을 감고 내부의 시선(심안)으로 감지해야만 가능한 일이기도 하다.

기가 자라면서 겪는 과정은 희미한 빛에서 점차 선명한 빛으로 나타난다는 사실이다.

기가 빛으로 나타난다는 사실에 조금은 놀랄 수도 있겠지만 기가 빛으로 나타나 다시 덩어리를 이루고 덩어리진 기가 단(丹)으로 변한다는 사실은 틀림없는 일이다.

사실 기가 빛으로 나타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할 수도 있다. 하지만 실제로는 기가 빛의 형태로 나타난다.

빛은 천지창조의 근원이자 유일한 힘이기도 하지만 빛을 통해 생명이 탄생되어지고 또 소멸되어져 간다는 사실에 의아심을 가질 수도 있겠지만 실제로는 빛과 기와의 관계가 밀착되어져 있음을 알 수 있다.

빛과 기와의 관계는 더 두고 연구해볼만한 가치가 있지만 분명히 밝혀둘 것은 기가 발전되면 빛으로 나타난다는 사실이다.

수련을 통해서 얼마만큼 빛의 크기를 느낄 수 있는가가 최대의 관건이기도 하다. 그리고 온 우주를 감싸고도 남는 빛을 느낀다면 이미 상당한 경지에 들어 서있음을 느낄 수가 있다.


기가 자라는 것을 눈으로 확인할 수는 없다. 어디까지나 영성으로 심안으로 보고 느끼고 만질 수 있을 뿐이다.

기의 형태가 처음에는 자장력의 세기로 나타나다가 나중에는 짜릿한 전기성으로 바뀌어 나타난다는 사실을 통해 기는 어느 한 가지 성질만을 지니고 태어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전기성으로 나타나는 기는 그만큼 성숙되어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렇게 기가 성숙되어져 갈 때마다 기의 응집력은 점점 강해지고 폭발적인 위력을 나타내게 된다.

우리 몸 안에서 이렇게 강렬하고도 위력적인 기가 살아 꿈틀거리고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기의 크기는 확산되어져 간다.

기는 기의 통로인 경락을 따라 빛의 형태로 꾸준하게 순환하며 눈덩이처럼 불어나기도 한다. 고차행공으로 올라갈수록 기의 응집밀도는 더욱 조밀해지고 빛으로 온 우주와 하나 되는 기쁨을 맛보기도 한다. 더욱 발전되면 온몸을 향해 뇌성벽력과 함께 번개가 빗발치는 견디기 힘든 경험을 하기도 한다.

여기서 기의 성질이 전기성과 자기성이 하나로 합쳐져 있음을 강하게 느끼게 된다.

평소에는 기의 성질이 자장력의 형태로 나타나지만 수련의 정도가 깊어질수록 전기성과 자기성이 조화된 새로운 형태로 나타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기는 전기성과 자기성으로 이루어져 있고 +(양) 성질과 -(음) 성질을 지닌 이 둘의 관계는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기도 한다. 마치 음양의 관계처럼 +(양) 성질을 지닌 전기성은 양의 성질을 지녔고 -(음) 성질을 지닌 자기성은 음의 성질을 지니고 우주를 떠돌아다니기도 한다.


심장에서 흘러나온 전기와 혈액에서 자화된 자기성이 인체전자석의 원리에 의해 강력한 집적능력을 보이면서 강화된 기에 의해 우주와의 연결력을 갖고 친밀함을 유지한다는 것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세계에 대한 신뢰감을 형성함과 동시에 강력한 힘을 불어 넣어주기도 한다. 그만큼 기는 우주를 포함하여 우리 몸 안에서도 자생하고 있다는 사실을 자명하게 보여주는 것이다.

기를 좀 더 깊이 있게 파고 들어가다 보면 기를 움직이는 또 다른 물체가 존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비록 기 이전의 세계이자 본원적 우주통신국과의 관계이지만 혹자는 우주이전의 세계 또는 하느님의 힘이라고 말하기도 하지만 어찌 되었든 기를 움직이는 또 다른 힘이 이 우주에는 존재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기는 우주의 모든 곳을 자유왕래하며 생명체와 비생명체에게 힘을 불어넣어 주고 있다.

우주의 구심점에서 기가 없었다면 어쩌면 혼란에 빠져들 수도 있었을 것이다. 다행히 우주를 떠받치고 있는 기가 있기에 우리는 안전하게 지금껏 잘 버텨오고 있는지도 모른다.


기는 물리적인 기와 논리적인 기로 다시 나눠볼 수 있다. 물론 기(氣) 자체는 비물질이기 때문에 따로 구분할 성질의 것은 아니다. 편의상 기만 느끼는 정도를 물리적인 기로 명명하고 영적으로 승화된 기를 논리적인 기로 표현하고자 할 뿐이다.

물리적인 기란 침묵의 방 하단전에서 단로(丹爐)에 의해 형성된 강력한 기를 말한다. 단순히 기의 느낌만 느끼는 상태이지만 기계적인 생각으로 경락을 따라 순환시키다보면 기는 응집력을 갖고 점차 불어나게 되어있다. 하지만 이것이 영적으로 승화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논리적인 기로 바꿔 놓아야한다. 논리적인 기로 승화시키기 위해서는 우주사상과 확고한 고요의 극점을 향해 달리는 마음이 필요하다.

우주사상이란 하늘의 뜻과 자연의 섭리를 익히고 흔들리지 않는 마음가짐으로 끝까지 가고자하는 금강석 같은 마음이라고 보면 된다. 가다보면 험난한 길이 산적해 있다. 이것을 뚫고 나가기 위해서는 수없이 똑같은 길을 걸으면서 새로움을 발견하고 그에 힘입어 정진해나가는 굳은 마음이 필요하다. 생사를 초월하는 마음가짐으로 정진해 나가다보면 생사에 대한 초탈을 경험할 수도 있다. 단순히 다람쥐 쳇바퀴 돌듯이 도는 것이 아니라 보다 더 효율적으로 움직일 수 있는 원리가 있다면 그것을 강구하고 연구하여 자신만의 독특한 방법으로 세워나간다면 논리적인 기로 승화시키는 일이 결코 어려운 일만은 아닐 것이다.

단계는 항상 차근차근하게 마련되어져 있다. 그것을 건너뛰기보다는 기초에 충실하면서 확고한 자신만의 길을 찾아내는 일이 더 중요하다.

지침은 어디까지나 지침에 불과하다. 사람마다 신체상의 조건이 다르고 또 정신적인 추구가 다르다보니 자신의 몸에 맞는 자신의 입맛에 맞는 것을 찾기 마련이다. 아무리 좋고 훌륭하다할지라도 자신에게 맞지 않는다면 그것으로 끝이다. 그리고 내면으로 들어갈수록 강요할 수도 없다. 자신이 새롭게 발견해내는 길을 찾아가면서 정진해 나가야 진정한 구도자의 모습으로 비춰진다. 지금껏 다른 각성자들의 모습들을 보면 제각기 자기만의 독특한 색깔들이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은 일률적으로 똑같은 길을 걷지 않고 있음을 느낄 수 있는 것처럼 자신만의 독특한 점들을 발견하고 키워나가는 것이 중요함을 역설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자신의 색깔을 찾으면서 정진해 나간다면 분명 많은 점에서 눈부신 발전이 있을 것이다.


물리적인 기는 건강적인 측면에서 좋고 또 마음을 안정시키는 정도의 편안한 상태이다. 하지만 논리적인 기는 물리적인 기의 상태에서 느껴볼 수 없는 정신적인 세계를 넓혀나가 본원적 우주통신국과의 교신을 꾀하고 눈에 보이지 않는 차원 높은 세계를 왕래하는 영적인 기이기도 하다. 수련을 하겠다고 마음먹은 사람들은 대부분 논리적인 기의 상태로 승화시키기 위해 노력하는 걸로 알고 있다.

물리적인 기는 기초를 다지는 기반이라고 한다면 논리적인 기는 그 위에 지어 논 완성된 건축물이라고 표현할 수 있다.

이 둘은 모두 다 중요하다. 어느 한쪽만을 우월의 위치에 놓는다면 그것은 어불성설에 불과하다.

항상 기초가 있어야 완성될 수 있기 때문에 이 둘은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에 놓여져 있다.

기를 완성된 기로 승화시키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탐구하고 노력하고 실천을 해야 한다.

아는 것은 어디까지나 아는 것으로 그친다. 아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실천이다. 실천을 통한 결과가 나와야 사람들은 그 사람을 높이 평가해준다.

아는 것은 조금만 노력해도 얻을 수 있다. 하지만 실천은 극기와 한계에 부딪힌 노력만을 요구하기 때문에 누구나 접근할 수는 없다.

이러한 모든 것을 뚫고 정상에 올랐을 때는 하늘도 이에 감동하게 되어있다.

하늘은 항상 도전하는 사람의 편에 서 있다. 나약하고 게으른 사람에게는 그만한 혜택밖에는 주지 않는다. 아침부터 부지런을 떨면 하늘은 조금씩 마음을 열어놓고 그 사람을 기다리며 결과를 지켜본다.

하늘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문을 열어놓고 있다. 다만 하늘이 내려준 시련을 잘 견뎌낸 사람만을 위해 따로 길을 마련해 놓고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결론적으로 기는 +(양) 성질을 지닌 전기성과 -(음) 성질을 지닌 자기성을 지닌 비물질로서 음양의 조화로운 관계처럼 우주를 떠돌면서 생명을 잉태시키고 활력을 불어넣어주며 소멸의 과정을 겪기도 한다.

이는 우주에너지로서의 임무를 충실하게 지켜내려는 자신감에서 비롯되어지기도 하지만 우주에서 기를 빼놓으면 우주 자체가 성립되지 않는다는 경고성 메시지가 저변에 깔려있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다.

또한 우주에너지인 기를 몸 안에 가둬두고 다닌다는 사실은 건강적인 차원을 떠나서 우주에 대한 시각을 새로운 각도에서 살펴볼 수 있다는 것을 말해주는 부분이다.


기는 아래와 같이 여러 가지 용어로 불린다.

프라나(Prana), 바이탤러티(Vitality), 오로라(aurora. 극광(極光)), 바이오플라스밀 에너지(Bioplasmic energy), 생명에너지, 생체에너지, Mitgen선, 생명의 힘, 에텔, 생명자기(Human magnetism), 영적유동체, 생명의 기운, 우주 기운, 영, 코스믹 에너지(Cosmic energy), 생명 자기적 파동, 성령, 하나님의 힘, 생명선, 천지 기운, 염력, 우주질(質), 우주의식, 우주파동, 지상의식, 빛, 광명, 실상. 생명의 싹, 생명의 씨앗 등으로 불리기도 한다.

 

이렇게 용어는 다르지만 결국 氣를 다른 이름으로 부를 뿐이다. 앞으로 또 다른 이름으로 불릴 수도 있음을 알아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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